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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중심에 있는 광화문은 조선 시대부터 왕과 백성이 만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 앞에는 월대라는 넓은 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월대는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 등 주요 건물에 설치한 대를 뜻하는데, 광화문 앞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 월대는 일제의 훼손으로 사라졌지만, 최근 발굴 조사와 복원 계획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광화문 월대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복원 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월대 100년 만에 다시 복원되다

     

    광화문 월대 유적 전경

     

    그러나 최근 문화재청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월대를 복원하기 위해 발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월대의 어도, 계단, 장대석 등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월대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추가 조사 및 복원 공사를 올해 10월까지 마무리하고, 광화문 월대를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원래 지형대로 복원하되, 주변 도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서울시에서 정비 계획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조선 전기 유구 확인(문화재청 보도자료 확인)

     

     

    월대는 왕과 백성의 소통 공간

     

    월대는 임금이 광화문을 벗어나 행차할 때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사용했던 공간입니다. 임금은 월대를 통해 백성들과 소통하고, 백성들은 임금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광화문 월대 : 가운대 일직선이 왕이 다니던 길인 어도

     

    궁궐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으며, 스테이지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월대는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 같은 건물에서도 볼 수 있지만,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한층 높게 쌓은 건 광화문 월대가 유일합니다.

     

    월대는 일제의 훼손으로 사라졌다

     

    월대는 조선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월대와 함께 주변 시설을 훼손하고 전차 철로를 설치했습니다.

     

    상수도관이나 다른 관도가 월대 영역을 관통하면서 월대의 흔적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1920년대에는 난간석이 헐릴 위기에 처했으며, 그 후로 월대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며...

     

    광화문 월대는 조선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일제의 훼손으로 사라진 월대가 100년 만에 다시 복원된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될 것입니다.

     

    광화문 월대가 완성되면, 우리는 왕과 백성이 만나던 그 공간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 월대의 복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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